2017/05/24

"당신 안에 있는 방주의 존재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25 10-22

성경에는 모세의 방주, 노아의 방주와 언약궤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세 방주는 모두 영어 성경에서 Ark라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방주들은 모두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 앞서가심을 상징하는 속죄소입니다.

출애굽기는 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한 용감한 어머니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이집트 왕 바로는 새로 태어나는 모든 남자 아이를 죽이라는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목소리가 어머니의 마음 속에서 속삭이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갓 태어난 핏덩어리 아이가 속삭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3개월 동안이나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를 숨겨 키웠습니다. 그러나 이 아기를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만큼 아이 울음 소리가 커졌을 때 그녀의 신앙은 더욱 위험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어머니의 신앙이 담대해 진 것입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녀는 나일강에 즐비한 갈대를 꺾어다가 단단하고 물이 새지 않는 작은 요람 보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이 아기의 장래를 지킬 것을 간절히 기도하며 그 아이를 새 보트에 넣고 강변으로 가져가 나일강 갈대 숲 사이로 띄워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하나님이 행동하시기만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어린 핏덩이가 탄 보트는 구원의 방주였습니다. 이 방주는 갓 태어난 모세가 바로의 딸에 눈에 뜨일 때까지 안전하게 지켜주었습니다. 이 갈대 방주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계획과 개입이 어떤 결과를 이어지는 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의 방주가 지어지기 훨씬 전에 다른 방주가 있었습니다. 6 5-8에 보시면,

“주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 뿐임을 보시고서, "내가 창조한 것이지만, 사람을 이 땅 위에서 쓸어 버리겠다그러나 노아 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

홍수 심판이 결정된 가운데 노아 만은 구원 받을 것이 예고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는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산악지대에 살고 있었고, 그가 사는 가까이에는 강이나 바다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에게 큰 방주를 짓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노아는 이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마침내 홍수가 나고 땅에서 물이 솟구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하늘의 창문이 열리고 비가 40 주야로 땅에 쏟아졌다고 말씀합니다.

600세 되던 해에 노아는 그의 아들들과 아내, 그리고 짐승들의 대 퍼레이드를 방주로 이끌었습니다. 지구 표면에 물이 차오르며 산에 지어진 방주가 떠올랐습니다. 단 한 사람이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한 결과 그가 지은 배가 구원의 방주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장막이 어떻게 지져야 하는지 그 안에 들어갈 가구까지 자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막에는 일곱 가구를 배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방주(ark, 언약궤) 였습니다.

언약궤는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길이 4 피트, 너비와 높이가 2.5 피트 크기로 만든 직사각형 모양의 방주였습니다. 상단에 천국을 대표하는 날개 달린 생물의 조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나무로 만들고 겉에 금으로 칠하긴 했어도 언약궤는 히브리인들에게 가장 거룩한 성물이었습니다. 방주에는 긴 장대가 앞 뒤로 뻗어 있어서 이동시에 쉽게 들어 올려 레위인들이 메고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1. 요단 강의 방주


이제 성막이 완성되자 이 방주는 항상 거룩한 지성소에 배치되었고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차례 그 방에 들어가는 경우를 빼고는 아무도 그 방주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매년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궤가 있는 지성소의 긍휼의 자리에 이스라엘을 위해 희생된 어린 양의 피를 가져와, 사람들의 죄를 용서 받기 위한 희생 제물로 그 자리에 쏟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여행을 계속해야 하는 사람들 이었기 때문에 성막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들이 가는 곳마다, 레위인들이 방주를 메고 갈 것입니다 이 방주는 이스라엘이 가는 어느 곳에도 하나님의 임재 하심을 상징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을 향해 사람들을 인도할 계획을 세우고있을 때, 언약궤에 대한 강력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여호수아 3 3-4을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는 것을 보거든, 제사장들의 뒤를 따라라. 제사장들이 너희가 가는 길을 안내할 것이다. 너희와 언약궤 사이는, 이천 보쯤의 거리를 띄우고, 그 궤에 가까이 가지 말아라."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리더십을 따라 요단 강을 건너기 위해 장막에서 나왔을 때,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그 다음 홍해 도하만큼 극적인 아름다운 사건이 전개됩니다.

방주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에 이르렀을 때, 강물은 제방까지 가득 차 올라 있었습니다. 그 다음 무슨 일이 일어 났는지 잘 알고 계시죠? 그러나 제사장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극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3:16. 위에서부터 흐르던 물이 멈추었다. 그리고 사해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완전히 끊겼다. 그래서 백성들은 여리고 맞은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그리고 17절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것을 봅니다. "온 백성이 모두 요단 강을 건널 때까지, 주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강 가운데의 마른 땅 위에 튼튼하게 서 있었다."

하나님께서 당신보다 앞서 가시며 당신의 길을 예비해 주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당신 삶의 모든 중요한 순간에 언제나 앞서 방문하셔서 거기에 미리 머물고 계십니다.

3:4. "너희가 이전에 가 보지 않았던 길을 가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멘 방주가 너희가 가는 길을 안내할 것이다."

이전에 가 보지 않았던 길을 가기 때문에…..

우리는 이전에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기 전에 언제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간을 낭비합니다.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노인이다. 그래서 나는 결코 이전에 일어난 적이 없는 내 인생의 많은 어려움을 보고 있다."

솔직히 요단의 거센 물길을 앞에 두고 이 강을 건널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자신에게 물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차가운 물이 두려우신 가요? 거센 물결이 두려우신 가요? 살고 싶으신 가요?

돌아온 길을 동경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동행을 믿으십시오. 그렇습니다. 혹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계곡을 지나고 계실지라도 주께서 앞서 가시며 원수를 제거하시니 앞의 찬 물결을 두려워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의 감정이 아직 그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강 건너를 바라보십시오. 승리와 환호의 미래 비전을 미리 바라보실 수는 없으신가요?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우뚝 서 계십니다. 그는 내 길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가 보지 않았던 넘쳐 흐르는 요단 물줄기에서 우리는 두려움 대신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전쟁의 폭풍 한가운데서 둑까지 차오른 물을 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안전하게 건너, 꿈에 그리던 가나안 복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약속하신 그 땅의 새 주인으로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놀라지 말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위험한 길을 내가 먼저 가서 네 앞 길을 예비하겠다."

이것이 요단의 방주의 의미입니다. 요단의 언약궤, 하나님의 영원한 실체입니다.


2. 여리고의 방주


계속해서 여리고의 궤는 하나님이 강력히 살아계심을 보여줍니다.

여리고는 용맹스런 군사들로 보호받는 적들의 최대 거점 도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 여리고와 비교될 수 없을 만큼 허약한 비군사 공동체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어떻게 여리고를 정복할 수 있었습니까?

여호수아가 도시를 점령하는 전략은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전투를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은, 엿새 동안 그 성 주위를 날마다 한 번씩 돌아라 …. 7일 째 되는 날에, 너희는, 제사장들이 나팔을 부는 동안, 성을 일곱 번 돌아라. 제사장들이 나팔을 한 번 길게 불면, 백성은 큰 함성을 질러라. 그러면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있는 전투 기록입니다. 그리고 물론 적의 진지가 무너져 내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전쟁사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전략이 방주입니다.

성 주위를 도는 행렬은 6일간 하루 한 번, 제 칠일에는 일곱 번, 백성들은 언약궤를 메고 있는 제사장들을 따랐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군대가 전투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방황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연합 기도와 순종,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부르는 제사장들의 단 한 번의 나팔 소리에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임재는 힘입니다. 주님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성도들에게는 두려움과 낙담, 질병과 고통의 산과 언덕이 낮아집니다. 소원과 분리와 외로움과 절망의 벽이 무너집니다.


3. 빼앗긴 방주


약속의 땅에 도착한 후 이스라엘은 슬프게 죄를 지었습니다. 방황하는 광야에서 집으로 돌아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버립니다. 그 결과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그들에게 방주를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블레셋 사람들의 실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강력한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방주가 머무는 곳마다 블레셋 백성과 우상들이 멸망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렇게 무섭게 내려치자 그들이 사무엘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스라엘 신의 궤를 돌려 보내어, 그 있던 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지 않게 해주시오!" (삼상5:11)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는 악과 그 주변에 큰 혼란을 일으키십니다. 그러나 블레셋에게 방주를 빼앗겼던 것은 이스라엘의 죄와 불충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를 우리의 결재에 맡겨 놓으십니다. 우리는 그 분의 임재를 위해 십자가의 징표를 지녀야 합니다. 말씀에 대해 순종하고, 충성하는 것이 그 분의 임재를 지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방주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왔습니다. 솔로몬은 그 주변에 성전을 지었습니다. 갈대아인들이 예루살렘을 침략해서 성전을 파괴했을 때 이 방주는 역사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성경에 마지막으로 언급된 내용이 있습니다. 밧모 섬의 감옥에 갇혀있던 요한은 환상 가운데 영원의 비전을 포착합니다.

11:19. "그러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방주)가 보였습니다. 그 때에 번개가 치고, 요란한 소리와 천둥소리가 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큰 우박이 쏟아졌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그의 약속의 승리였습니다.

그 분의 기름 부으심은 이 땅에서는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응답, 즉 하나님에 대한 대한 순종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한 마음의 "방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64-5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다윗과 이스라엘의 모든 가문은, 온 힘을 다하여서, 온갖 악기와 수금과 거문고를 타며, 소구와 꽹과리와 심벌즈를 치면서, 주 앞에서 기뻐하였다.”

방주를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져 오는 기쁨 가운데서, 사람들은 예배의 기쁨에 빠져들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온 백성이 주님 앞에서 하나되는 일치감의 행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신 안에 있는 방주의 존재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 당신은 요단의 방주를 따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가십니다.

2) 당신은 여러고의 방주를 순종함으로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언덕을 낮출 수 있습니다.

3) 블레셋에 빼앗긴 방주는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상실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누리기 위해서, 그리고 예배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당신은 그 분의 부르심에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당신 마음과 현실을 짓누르던 고통과 두려움의 언덕이 낮아지고 승리의 함성이 도처에서 들려오는 것을 느끼고 누리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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