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1

“어떤 치유를 원하십니까?” (누가 복음 17장 11-19)

갈보리 장로교회 주일 메시지 (2017-4-30)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셨습니다. 그가 중간에 사마리아의 마을에 들어서기 무섭게 나환자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곳에 서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 스승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사람들이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 주목하십시오.

나병은 예수 시대의 가장 끔찍한 질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나병을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병은 보기에도 처참하고 아무도 고칠 없는 치명적인 질병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문둥병을 죄와 관련시켰습니다. 병에 걸리면 본인은 물론이고 그의 부모님도 끔찍한 고통을 함께 겪었을 것입니다.

구약 율법에 따르면 나병 환자는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완전히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포함해서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6피트 이내에 접근 없었습니다. 13:45.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것이요

나병 환자는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영화에서 보는 좀비들처럼 취급되었습니다. 그는 거주지에서 추방 당했고, 세상과 하늘에서 완전히 단절 되었습니다. 레위기13: 46. 있는 동안은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그들은 도심에 진입할 없었습니다. 그의 거주지도 도시 성문 밖에 있어야 했습니다.

나병은 어떤 인간적인 수단으로도 고칠 없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나병은 오직 하나님 만이 치료할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던 이유 가지는 그가 나병으로부터 사람들을 고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선한 사람도 때로 끔찍한 고통을 겪습니다. 그리고 고통이 항상 육체적인 것은 아닙니다. 때로 정신적 혹은 정서적 고통도 겪습니다. 가족과 친구들과 사회에서 완전히 단절된 나병으로 인해 사람들이 겪고 있을 정서적, 정신적 고통을 상상해보십시오.

사마리아의 10명의 나환자들은 예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중요한 회의 스케줄에 쫓겼을 있고, 많은 사역으로 극심한 육체적 피로감을 겪었을 있고,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 있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환자들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절망적이었기 때문에 예수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상관없이 그를 방해하는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향해 발치에서 멈춘 체로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누군가에게 이토록 간절히 그리스도의 치유의 손길이 필요한 것을 적이 있으십니까? 이런 삶은 인간적으로 너무나 잔인한 삶입니다. 여러분, 매년 3 명의 미국인들이 자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지난 40 성인자살률이 증가했습니다. 모든 자살의 절반 이상이 25-65 성인 남성에게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풍요와 자유의 미국에서 많은 성인 남녀들이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것입니까? 그들 대다수는 육체적 고통을 겪는 사람이 아닙니다. 정서적인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치명적일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나병에 걸린 사람들은 병의 원인조차 알지 못해 인생의 절박한 단계에 있습니다. 오늘날 알코올이나 마약 문제로 아들이나 딸에게 다가 없는 절박한 상태의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역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사람과 같이 정서적인 나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들은 매일 절규합니다. "예수, 스승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오늘 예수님은 나병 환자들을 보시고 동정심 이상의 감정을 느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들은 나병으로부터 고침 받았습니다. 이것은 절망의 삶을 사는 우리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탄원과 간청을 들으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뿐만 아니라 간청하는 모든 이들을 치료하십니다.

마태9장에 보시면 위대한 의사이신 예수께서는 비상 사태를 당해 가정으로 가시는 중이었습니다. 불치의 어떤 병으로 죽어가는 어린 소녀가 있었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예수님이 오시도록 간청했습니다. 그때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다고 전해집니다. 군중 가운데 상당히 다른 이유로 거기에 있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12 동안 그녀는 출혈로 고통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일부 현대 학자들은 이것이 출혈하는 암이라고 이론화 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의학의 한계를 넘어선 불치의 암을 앓고 있는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예수님의 관심을 있었습니까?

Levitic Law
따르면, 출혈이 있는 여성은 부정한 여인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터치해서는 안됩니다. 어느 그녀는 예수님의 권능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자기 마음에 이렇게 선언합니다. "나는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해도 치유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많은 군중을 헤치고 들어가 예수님의 뒤에서 살며시 손을 뻗어 예수님의 옷을 만졌습니다. 예수는 즉시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누가 나를 만졌느냐"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당황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누가 예수를 만졌냐고요? 주님, 주위를 둘러 보세요. 모든 사람이 당신을 만지고 있습니다.

잉글리쉬 버전은 그들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합니다. "이렇게 물어 보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때 예수께서는 성경에서 가장 신비한 계시 하나를 대답하셨습니다. 5:20 30. 예수께서는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몸으로 느끼시고…., 수년간 저는 절에 매료되었습니다. 순간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여인이 배터리를 갈아 끼웠습니까? 마치 파워 스위치를 설명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몸으로 느끼시고…..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도는 군중 가운데서 믿음의 사람의 손길을 느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딸아,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 그리고, 우리는 그녀가 즉시 치유되었음을 압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나병 환자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자신의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가족과 공동체로 복귀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였습니다. 처방전을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치유의 열쇠였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했을 즉시 깨끗해졌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그분을 신뢰하고, 계속해서 믿음의 삶을 살도록 지시하십니다. 순종으로 우리도 그분의 치유의 능력을 경험하게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끔찍한 병을 고쳐 주셨을 명의 나병 환자들 가운데 사람만이 큰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되돌아와서, 예수의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1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되돌아온 사람은, 외국인 명밖에 없느냐?"

여기서 "외국인"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사회에서 가장 크게 거절 당한 사람이 가장 감사했습니다.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묘사에서 그는 외국인이었습니다. 그는 신분 상으로 외국인 일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외국인이었습니다.

2:12. 때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고, 이스라엘 시민권에서 제외되어서, 약속의 언약에서는 외인으로서, 세상에서 아무 소망도 없이, 하나님도 없이 살았습니다.

그는 율법에 명시한 외국인으로서, 세상에서 아무 소망도 없이, 하나님도 없이 살았던 존재였습니다

명의 외국인, 그가 돌아온 이유는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는 자신이 구원 받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육체의 구원 만이 아니었습니다. 정신적으로 구원 받아야 했습니다. 영적으로 구원 받기를 사모했습니다.

간절함으로 돌아와 앞에 구원을 사모하며 무릎 꿇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18.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되돌아온 사람은, 외국인 명밖에 없느냐?" 19. 그런 다음에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거라.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우리의 인생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누가 남은 길을 행복하게 갈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말할 것도 없이 감사할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을 인해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내일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현재를 인해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미래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주인공이 경험한 행복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가 치유 받고 돌아와 앞에 엎드려 사례하자 예수님은 "일어나서 가거라.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셨습니다. 육체의 치유를 감사했더니 그의 영혼의 구원을 보장하신 것입니다.

그날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질병을 앓고있던 절망적인 남자들. 그들 모두는 육체적으로 치유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들 모두 영적으로도 치유된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전인적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칭찬 받는 존재가 됩니다. 18.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되돌아온 사람은, 외국인 명밖에 없느냐?"

오직 그만이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몸을 치유하고, 여러분의 가정 생활을 치유하고, 감정을 치유할 치료가 필요하십니까?   기적을 체험하기 가장 좋은 지름 길은 예수님이 이미 가운데 시작하신 치유의 구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는 축복의 미래를 여는 열쇠입니다. 오늘의 답답한 현실을 극복하고 미래를 열고자 하십니까? 그러러면 멋진 감사의 제단을 매일 쌓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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